[화장품 칼럼] K-뷰티, 어디로 가야하나 ‘개성 가둔 규제’

2022.10.11 11:56:56

김수미 코스웨이(주) 대표

[코스인코리아닷컴 전문위원 김수미] 화장품 회사 27,000개 시대 화장품 시장의 숫자 만큼 시장도 성장한 것일까? 화장품 기업은 지난 2012년 제조판매업의 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현재 화장품 시장은 그에 걸맞게 질적으로도 성장했는지 냉정하게 봐야 할 시점이 됐다.

 

2020년 한 해에만 4천 개가 넘는 화장품 회사가 신규 창업을 했고 2021년에도 2,800개에 달하는 신생 업체가 등장했다. 2012년 1,438개 남짓한 화장품 회사가 10년 사이 27,000개를 넘어섰다. 올해도 이렇게 신생 업체가 등장할 경우 곧 3만개 화장품 기업 시대가 도래한다. 10년 전 21,000개 정도였던 약국의 숫자가 25,000개가 되는 사이 화장품 회사는 약국이 존재하는 숫자 만큼이나 늘어난 것이다.

 

한집 걸러 한 집이면 있다는 편의점은 전국에 약 5만 개이고 골목 하나에 몇 개씩 자리잡은 커피숍은 약 8만개에 달한다고 하는데 화장품 창업 열풍이 언제 까지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급격한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화장품 업계의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한국 화장품의 품질은 그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발전해 왔고 넘치는 제품이 다양한 유통을 통해 제공되기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마음껏 새로운 화장품을 시도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와 달리 신생 화장품 업체들은 손쉬운 창업과 손쉬운 제조에 비해 준수해야 할 화장품 법률과 제도들이 상당히 까다롭다. 또 유통에 진출하고 해외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절차들이 각기 다르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막대한 자금을 들이며 공들인 브랜드의 경우에도 시장에 나왔다가 바로 사라지고 사드, 코로나 등 예기치 않은 위기가 닥칠 경우 막대한 손해를 보고 시장에서 사라 지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시장에 새로운 제품을 하나 선보이는 거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자취를 감춘다. 10년간 20배에 달하는 양적 성장에 비해 화장품 시장의 규모는 단 2배 성장한 것을 보면 화장품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낸다는 게 얼마나 높은 벽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왜 한국의 화장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숫자만큼 시장의 규모가 그에 걸맞게 성장하지 못 했는지에 대한 해답은 K-뷰티가 가야 할 길과 같은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소비자는 그 어느 나라 보다 화장품에 대한 관심과 지식 수준이 높다고 정평이 나 있다. 과거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비쌀수록더 잘 팔린다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를 등에 업고 손쉽게 한국의 시장을 장악해 나간 것과는 달리 지금 한국의 소비자들은 효능, 효과, 성분, 가격을 전문가적인 수준으로 깐깐하게 평가한다.

 

이렇게 엄격한 평가를 통과한 제품들은 신생 브랜드이건 명품 브랜드이건 제품에 있어서 만큼은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며 브랜드와 제품을 분리해서 소비한다. 한국의 화장품 시장은 향수, 남성화장품, 색조와 두발화장품 등 몇몇 카테고리를 제외하고는 매우 포화된 성숙기의 시장이다. 마치 유럽에서 화장품과 향수 시장의 급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한국의 화장품 시장 역시 내수만으로는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에 직면해 있다.

 

화장품 시장의 성장이 잠시 멈춘 코로나 시기 수출 시장 만큼은 다행히도 호조를 보였다. 해외 시장이 봉쇄되고 대면 접촉이 막힌 상황에서도 전세계적으로 광풍을 일으킨 한국의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등장하는 K-뷰티는 세계 시장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국제 행사가 취소되던 코로나 시기를 지나 올해는 여러 차례 혼선은 있었으나 어쨌든 각 나라 별로 박람회가 개최됐다. 지난 4월에는 ‘2022 코스모프로프 볼로냐’가 이탈리아에서 개최됐다. 3년만에 개최된 행사에는 70개국에서 2,700개가 넘는 기업이 참석했다. 한국은 170개 넘는 기업이 26개의 국가관 중 3개를 차지할 정도로 대거 참석했다.

 

한국을 비롯해 전시회에 참가한 기업의 숫자와 전시의 규모는 어느 정도 회복을 했으나 관람객의 수준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의 규모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기업이 참가를 하지 못하고 중국 관람객들 또한 해외 출국이 봉쇄된 걸 감안하면 전시의 규모나 관람객 수준은 회복된 거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한국 기업들은 한국 브랜드를 모방하고 우리 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서 경쟁하는 중국 브랜드가 없어서 상대적으로 성과가 좋았다는 후일담도 들을 수 있었다. K-뷰티가 가야할 길이 해외 시장인 걸 알기에 내수가 아닌 해외 시장에 공들이는 회사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이러한 움직임은 매우 환영할 만하다.

 

한국 기업은 전시회에 설치한 국가관 숫자와 참가한 기업 숫자만큼은 그 어느 나라보다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한국 화장품 시장이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는 동안 규모 면에서는 단 2배만 성장한 것과 같은 데쟈뷰를 일으킨다. 한국의 부스에 가면 동일한 제형, 동일한 상품, 비슷한 디자인과 유사한 컨셉들이 서로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화장품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다양한 상품과 제형, 기술, 컨셉이 존재하는 데 반해 한국 화장품 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로 뭉쳐지고 각각의 기업 또는 개별 브랜드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브랜드를 찾기가 어렵다. 이는 화장품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각자 해결해야 할 과제임과 동시에 한국을 세계 3대 화장품 강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정부의 공동 과제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발표된 ‘식의약 규제혁신 100대 과제’ 중 화장품 부문의 규제 개선은 단 3개만 등장한다. 정부 주도의 천연 유기농화장품 인증 제도를 민간 주도로 전환, 책임판매업자의 화장품 원료 보고 의무 폐지, 화장품 책임판매관리자 자격 요건 완화이 세가지다. K-뷰티가 가야하는 글로벌의 길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제조원 표기 폐지’ 하나만 개선이 되더라도 3가지 규제를 개선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제조원을 표기하는 것은 한국의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라고 주장하는 게 소비자보호원의 입장이지만 이는 한국 화장품 회사만이 가지는 독소 조항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무력화시키는 매우 심각한 규제다.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 때 각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투자하고 마지막 완성된 제품을 표준으로 공장에서 생산한다.

 

그 기간 안에는 무수히 많은 시간과 자원, 각 사의 노하우가 집약돼 마지막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에 완성품을 선 보이는 것이다. 그 어느 나라도 개발의 완성품인 제조원 표기를 법률로 강제하지 않는다. 올해 방문한 이태리와 미국의 화장품 매장에서 화장품 업계에 종사하는 이라면 누구나 예견했듯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상황에 직면했다.

 

해외를 나갈 때면 늘상 화장품 매장을 방문하는데 특히 세계 1위 뷰티숍의 자리를 고수하는 세포라는 잠깐이라도 들러 K-뷰티 섹션을 무조건 찾아본다. ‘세포라’ 매장에 즐비하던 한국의 마스크팩과 한국의 화장품 브랜드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몇몇 브랜드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마스크팩의 경우 세포라의 자체 브랜드가 매대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비단 세포라만의 현상이 아닌 한국 화장품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제품이 잘 팔리면 겪게 되는 필수적인 과정과도 같다.

 

K-뷰티의 폭발적인 성장은 지금까지 양적으로 발산하는 데 머물렀고 해외 시장 진출 또한 같은 모습을 띄고 있다. 양적 성장에 걸맞은 질적 성장을 위해 해야 할 무수한 과제들 중 하나는 기업이 자신의 브랜드에 자신만의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서든 그 브랜드로서 식별해 낼 수 있도록 투자하지 않으면 바로 대체될 수 있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상품으로 소비되는 K-뷰티를 넘어 브랜드로서 소유하는 K-뷰티로의 성장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더불어 정부 차원에서는 기업들의 투자와 노력이 허망하게 다른 나라에 넘어가지 않도록 기업의 노력을 고스란히 해외 기업에 제공해 주는 제조원 표기 규제를 최우선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K-뷰티가 어디로 가야할 지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각자 눈앞에 놓인 작은 이익으로 인해 화장품 산업 전체의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게 무엇인지 더욱 냉정하게 바라보고 규제를 개혁해야 하는 시점이다.

 

 

김수미 코스웨이(주) 대표이사

 

코스웨이(주) 대표이사, (주)애그머니 대표이사, (주)파워풀엑스 사외이사, 숙명여자대학교 향장미용학과 초빙교수, 성신여자대학교 월드뷰티최고위 특임교수

 



김민영 기자 min3949@cosi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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