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 12일부터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 PPWR)'이 일반 적용하면서 글로벌 화장품 업계의 패키징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PPWR은 EU 역내 출시되는 포장재 전반에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규제로, 제품뿐 아니라 용기와 라벨, 펌프 등 패키징 전반을 다루는 포괄적 규제로, 패키징 업계에서는 재활용과 재사용을 고려한 포장 설계와 함께 포장재의 환경적 성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와 관련 시스템 구축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8일 포장 전문매체 패키징 인사이트(Packaging Insights)는 PPWR 시행에 따른 업계의 대응을 조명하며 핵심 변화로 ‘증거 기반 규제 준수(evidence-based compliance)’로의 전환을 꼽았다. 단순히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거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실제 포장재가 규정에 부합하는지를 데이터와 기술적 근거로 입증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PPWR은 일반 적용에 앞서 지난해 1월 EU 관보를 통해 최종안이 공개됐다. 포장폐기물 발생량을 줄이고 회원국별로 상이했던 관련 규정을 조화시키는 것을 골자로, EU 내 모든 포장재를 대상으로 제조와 구성, 재사용, 재활용, 회수 및 폐기 등에 관한 요건을 규정한다.
특히 PPWR은 포장재의 제조부터 사용, 회수, 재사용·재활용에 이르는 패키징의 전 생애주기를 대상으로 재활용성을 높이는 설계와 재생원료 사용 확대, 재사용·리필 촉진, 불필요한 포장재 감축 등을 요구한다. 재활용 관련 요건도 단계적으로 강화된다. 법령에 따르면 2030년부터 재활용 가능성을 중심으로 한 요건이 본격 적용되며, 2035년부터는 실제 대규모 수거·선별·재활용이 가능한지를 충족해야 한다.
더욱이 해당 포장재가 실제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수거·선별되고 재활용될 수 있는지까지 고려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식음료를 비롯해 화장품, 생활용품, 제약 등 EU 시장에 포장제품을 공급하는 다양한 산업의 패키징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글로벌 기업들은 이에 맞춰 재사용·회수 시스템 구축, 재활용성 검증, 모노머티리얼 등 패키징 구조 개선, 관련 데이터 관리 등으로 대응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 소재를 선택하는 능력’보다 ‘패키징 전체를 순환 시스템의 관점에서 설계하는 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글로벌 맥주기업 하이네켄이다. 하이네켄은 2025년 기준 전체 판매량의 39%를 재사용 가능한 포장 형태로 판매했으며, 2030년까지 이를 43%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재사용 대상에는 유리병뿐 아니라 크레이트와 케그 등 다양한 운송·포장 자재가 포함된다.
주목할 부문은 포장재를 회수·세척해 재충전하고 이를 다시 유통하는 순환 시스템이다. 이와 관련해 하이네켄은 국가별로 회수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일례로 인도네시아에서는 ‘프로젝트 유턴(Project U-Turn)’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약화된 빈 병 회수 네트워크를 재구축하고 있다. 그 결과, 2023년 80%였던 병 회수율을 2024년 83%까지 높였으며, 2027년까지 9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재사용 시스템 확대에는 회수 인프라와 물류 비용, 규제 적용 방식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따른다. 업계는 재사용 포장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인프라 투자와 관련 규정의 명확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한계를 논의하기 위해 하이네켄은 지난 5월 코카콜라, 맥도날드, 크래프트하인즈 등 138개 식음료·패키징 기업과 함께 EU 집행위원회에 PPWR 시행과 관련한 법적 명확성과 기술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서한에도 참여했다.
패키징 제조업계에서는 모노머티리얼(Mono-material)과 재활용 친화적인 부자재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모노머티리얼은 패키징을 구성하는 모든 부속품을 단 한 가지 재질(폴리머 계열)로만 통일해 제작하는 기술로, 용기 소재뿐 아니라 라벨, 접착제, 슬리브, 펌프 등 전체 구조를 재활용 공정에 적합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패키징 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5월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포장 박람회 인터팩 2026(Interpack 2026)에서 브뤽너 마시넨바우(Brückner Maschinenbau), 프로폴(Profol), 타글리프 인더스트리(Taghleef), 토판(Toppan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기존 다층 필름을 대체할 수 있는 단일 폴리머 기반 연포장 구조를 선보였다. 여러 소재가 결합된 멀티레이어 구조를 단순화해 폐기 이후 선별과 재활용 과정에서의 처리를 용이하게 하는 전략이다. 캐나다의 라벨·부자재 업체 씨씨에 라벨(CCL Label)도 PET 재활용 과정에서 분리성을 높일 수 있는 저밀도 소재를 선보이는 등 패키징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특히 화장품과 퍼스널케어 제품에서는 용기 본체뿐 아니라 라벨, 캡, 펌프, 잉크, 접착제 등 여러 부자재가 재활용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술 변화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PET 용기를 사용하더라도 라벨이나 슬리브가 선별과 세척 과정에 영향을 줄 경우 전체 포장재의 재활용성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필과 재사용 포장도 주요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패키징 인사이트는 글로벌 1위 패키징 기업 암코르(Amcor), 유럽 최대 골판지 포장 기업 DS 스미스(DS Smith) 등 글로벌 패키징 기업들이 퍼스널케어와 이커머스 분야에서 리필과 재사용을 위한 패키징 솔루션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PPWR 대응 과정에서 패키징 데이터 관리와 추적성도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펠릭스 가스(Felix Gass) 패키징 스트레티지 랩(Packaging Strategy Lab) 대표는 "최근 패키징 규제 강화에 따라 패키징 소재와 구성, 재활용성 등에 대한 구조화된 데이터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현재 관련 정보가 브랜드와 용기 제조업체, 라벨업체, 소재업체 등 여러 공급망에 분산돼 있어 이를 표준화하고 디지털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화장품의 경우 하나의 제품에 용기, 펌프, 캡, 라벨, 접착제, 단상자 등이 결합되는 만큼 각 구성요소의 소재와 재활용 가능성, 재생원료 사용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전반의 정보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PPWR에서 강조하는 ‘증거 기반 규제 준수’ 역시 기업이 사용하는 포장재의 구성과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규정 충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로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재활용 공정에서 포장재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데이터로 검증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타이레놀, 리스테린, 뉴트로지나, 아비노 등 뷰티·헬스케어 브랜드를 보유한 켄뷰(Kenvue)는 AI 기반 폐기물 분석 기업 그레이패럿(Greyparrot)과 협력해 실제 재활용 시설에서 자사 포장재가 어떻게 선별되고 처리되는지 분석한다.
미국 최대 포장·가공기술협회인 PMMI(Association for Packaging and Processing Technologies)는 "과거에는 PET나 PP와 같은 소재 자체가 재활용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포장재의 재활용성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실제 재활용 현장에서는 용기 색상이나 형태, 라벨, 캡, 다른 소재와의 결합 여부 등에 따라 선별 과정에서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세계적인 소재 분야 R&D 연구소인 노르네르(Norner)의 탄야 라두신(Tanja Radusin) 수석 연구원도 패키징 인사이트와의 대담에서 "PPWR 도입에 따라 패키징 전략이 '재활용 가능한가(Can it be recycled)’에서 ‘실제 산업 현장에서 대규모 물량을 안전하게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인가(Will it be recycled at scale and safely)’로 이동하고 있다"며 "AI 기반의 선별기술과 데이터 수집, 재활용성 검증이 PPWR 대응의 주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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