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K-컬쳐 확산에 힘입어 국내 소비재 수출이 확대되는 가운데 화장품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중국 중심의 수출 구조를 벗어나 미국과 유럽, 나아가 중남미와 인도 등 신흥 시장으로 확대되면서 성장 기반은 한층 넓어졌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국내 화장품 산업이 향후 4~5년 내 세계 최대 화장품 수출국인 프랑스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5월 화장품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24.2% 증가한 11억 8,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5월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1~5월 누적 수출액은 56억 달러를 넘어서며 지난해 같은 기간 약 46억 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이에 따라 화장품은 5대 유망 소비재(농수산식품·화장품·패션의류·생활용품·의약품) 중 수출 1위 품목으로 올라섰다. 최근 3년간 소비재 수출을 이끌어온 농수산식품은 1~5월 누적 수출액이 54억 달러 수준에 머물면서 화장품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 주요 수출 품목과 비교해도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지난해 화장품은 15대 수출 품목 가운데 성장률 기준으로 선박과 반도체에 이어 3위를 기록했고, 수출 규모도 13위까지 올라섰다.
바이오헬스산업 수출 추이 및 전망

시장에서는 K-뷰티의 확장세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올해 국내 화장품 수출이 125억3,5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지난해(114억 달러)를 넘어 또 한 번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화장품 시장 확대와 K-뷰티에 대한 해외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은 2024년 기준 130억 달러 규모의 화장품 시장을 형성하며 세계 10위 시장에 올랐다. 보산진은 국내 화장품 시장이 2029년 1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증권가에서는 K-뷰티의 성장 여력이 여전히 크다고 보고 있다. 하나증권은 9일 발간한 'K-뷰티 다이내믹스' 보고서에서 현재의 성장 흐름이 지속될 경우 화장품이 2~3년 내 국내 주요 수출 품목 상위 10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나아가 지난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에 오른 한국이 향후 4~5년 내 세계 1위 수출국인 프랑스를 위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 최대 격전지 유럽, 차세대 시장 중남미…K-뷰티 신항로 열린다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의 배경에는 K-뷰티 수출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수출 구조가 중국 중심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옮겨간 데 이어 최근에는 중남미와 인도 등 신흥 시장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성장 기반이 한층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 화장품 지역별 수출 증가율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유럽 시장의 급부상이다. K-뷰티 수출의 중심축은 최근 3년 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현지 소비심리 위축과 규제 장벽으로 중국 수출이 위축된 가운데 2025년 미국이 핵심 시장으로 성장한 데 이어, 2026년 들어서는 유럽이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대미 화장품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하며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같은 기간 유럽 수출은 53% 증가하며 규모 면에서도 미국을 앞질렀다. 특히 영국(114%), 폴란드(132%), 네덜란드(161%) 등 주요 유럽 시장은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가파른 확대 국면에 진입했다.
실제로 1분기 화장품 업계의 어닝 서프라이즈는 유럽 시장이 이끌었다. 에이피알은 영국 시장에서만 약 30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실리콘투 역시 유럽 지역에서 1,6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실적을 거뒀다. 수출 호조는 ODM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코스맥스와 한국콜마, 코스메카코리아 등 주요 ODM 기업들은 해외 수요 확대에 힘입어 외형 성장을 이어갔다.
업계는 유럽 시장의 강점으로 국가별로 다양한 유통 채널을 꼽는다. 미국이 아마존 중심의 플랫폼 시장이라면 유럽은 국가별 유통망이 세분화돼 있어 통관, 인증, 라벨링 역량을 갖춘 국내 유통 벤더들의 경쟁력이 보다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럽 시장에서의 성장이 현재진행형이라면 중남미는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시장이다. 현재 중남미 화장품 수출은 현지 개인 사업자나 중소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성장 속도는 주요 권역 가운데 가장 빠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멕시코 화장품 수출 추이

하나증권은 올해가 중남미 시장 확대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K-뷰티 글로벌 유통 확대의 핵심 기업으로 꼽히는 실리콘투가 멕시코 법인 설립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영업 체계 구축에 나서면서 현지 공급망이 한층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스페인을 겨냥한 마케팅 콘텐츠가 SNS를 통해 멕시코, 콜롬비아, 파라과이 등 스페인어권 국가로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언어와 문화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국가 간 소비 트렌드가 전파되면서 K-뷰티 인지도 역시 함께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멕시코를 교두보로 중남미 전역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 경우 브라질을 포함한 대형 시장 공략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2027년은 K-뷰티가 중남미 시장에서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도 화장품 수출 추이와 전망

중남미와 달리 인도는 보다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하는 시장으로 꼽힌다. 박종대 하나증권 연구원은 "세계 최대 인구를 보유한 인도는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지역별 소득 수준과 물류 인프라 격차가 커 단기간 내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단기간 성과를 기대하기보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에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 단계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당장의 매출 확대보다 장기적인 시장 주도권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리콘투 등 유통 기업들은 현지 물류망 구축과 운영 역량 확보를 위해 지역별 전담 인력과 글로벌 매니지먼트 조직을 확대하고 있으며, 코스맥스 역시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 동남아 시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 내 생산 기반과 공급망 구축을 강화하고 있다.
# 넓어진 K-뷰티 영토, 프랑스 넘어서려면 '메가 브랜드' 키워야
유럽과 중남미, 인도 등으로 수출 지도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지만, K-뷰티가 세계 화장품 산업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프랑스라는 거대한 레거시(Legacy)를 넘어 지금의 돌풍을 지속 가능한 산업 경쟁력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궁극적인 과제는 '국가대표급 메가 브랜드(Mega Brand)'의 부재다.
현재 K-뷰티의 가장 큰 강점은 역설적으로 수많은 브랜드가 공존하는 생태계다. 한국 화장품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ODM·OEM 인프라를 기반으로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를 구축하며 새로운 브랜드가 끊임없이 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2015년 6,422개에서 지난해 2만 8,412개로 10년 만에 4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화장품 제조업체 수가 2,017개에서 4,158개로 두 배가량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브랜드 증가 속도는 훨씬 가파르다.
화장품 산업의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지면서 유명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 창업자와 자영업자, 온라인 셀러들까지 자신만의 브랜드를 출시하는 사례가 흔해졌다. 조선미녀, 아누아, 에이피알을 비롯해 수많은 인디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며 이른바 '1만 개 브랜드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생태계는 K-뷰티만의 독특한 경쟁력이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가 일반적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ODM 기업들이 연구개발과 생산을 뒷받침하고, 브랜드들은 상품 기획과 마케팅에 집중하면서 빠르게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었다. K-뷰티가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이유 역시 이 같은 민첩성에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산업의 강점이 동시에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 매출 1,000억 원을 넘어서는 스타 인디 브랜드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SNS 바이럴과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성장 구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행 주기가 짧은 뷰티 산업 특성상 소비 트렌드가 바뀌면 브랜드 경쟁력 역시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글로벌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 순위(2024년 기준)
실제 글로벌 화장품 산업의 주도권은 여전히 수십 년 동안 브랜드 자산을 축적해온 기업들이 쥐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글로벌 화장품 기업 매출 순위 상위 10개사는 로레알, 유니레버, 에스티로더, 프록터앤드갬블(P&G), LVMH, 샤넬, 바이어스도르프, 시세이도, 코티, 푸이그 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프랑스는 로레알과 LVMH, 샤넬, 푸이그 등 글로벌 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 그룹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수십 년에서 100년 이상 축적된 브랜드 역사와 충성 고객층, 글로벌 유통망을 기반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 가운데서는 아모레퍼시픽이 19위, LG생활건강이 20위, 애경산업이 88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이 세계 2위 화장품 수출국으로 성장했음에도 글로벌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선진 화장품 강국과 격차가 존재한다.
이해선 한국마케팅협회장은 "수많은 인디 브랜드의 등장은 K-뷰티 생태계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50년, 100년 동안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대표급 브랜드를 육성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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