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전문관을 마련하며 뷰티 카테고리 확장에 나섰던 국내 주요 이커머스 플랫폼의 화장품 사업이 새로운 전략적 전환점을 맞았다. 과거에는 화장품 브랜드를 자신의 플랫폼에 입점시키고 판매 수수료를 확보하는 유통 채널 역할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지분 투자 등을 통해 직접 브랜드를 육성하거나 자체 브랜드(PB)를 출시하며 제조 영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10일 카카오스타일은 자사의 패션 커머스 플랫폼 '지그재그'가 벤처캐피털(VC)과 협업해 뷰티 브랜드 지분 투자에 나선다고 밝혔다. 지그재그가 외부 VC와 협력해 뷰티 분야에 자금을 집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그재그 관계자는 “지그재그가 브랜드 마케팅을 지원하는 전략적 투자자(SI) 역할을 맡고, VC는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지그재그는 오는 20일 '뷰티 인큐베이팅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앞서 지그재그는 올해 초 인디 뷰티 브랜드 대상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출범했다. 프로그램 참여 브랜드의 지난 3~5월 합산 거래액은 지난해 10~12월보다 20%가량 증가했다. 현재 지그재그의 화장품 전문관 '직잭뷰티'에는 3,500여 개 브랜드가 입점했으며, 최근 3년간 거래액이 연평균 60%대의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무신사의 투자 자회사 무신사파트너스 역시 아모레퍼시픽과 공동 조성한 ‘AP&M 뷰티패션펀드’를 통해 유망 뷰티 브랜드 투자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에이블리는 브랜드가 상품 기획을 주도하고 자사가 생산과 마케팅을 지원하는 협업형 비즈니스 모델을 추진 중이다.
컬리는 뷰티 사업을 핵심 성장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상품본부 산하 조직이었던 ‘뷰티그룹’을 ‘뷰티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조직 격상이 곧바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신사업 단계를 넘어 주력 사업으로 자리 잡은 뷰티 부문의 성장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컬리가 2022년 선보인 화장품 전문관 ‘뷰티컬리’는 올리브영과 다이소, 무신사뷰티 등 경쟁 채널과 비교해 프리미엄 뷰티 색채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30~40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고가 브랜드 수요를 흡수해 왔으며, 실제로 컬리 내 뷰티 매출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보다 객단가를 높이기 쉬운 카테고리라는 점에서 뷰티는 컬리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변화가 유통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차별화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한다. 대형 화장품 브랜드 제품은 쿠팡, 네이버, 올리브영 등 다양한 유통 채널에서 판매돼 가격 경쟁이 불가피하다. 반면 플랫폼이 직접 투자하거나 기획한 브랜드는 해당 채널의 차별화된 콘텐츠로 기능해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하고 플랫폼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익성 개선도 중요한 유인으로 작용한다. 화장품은 식품이나 패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카테고리다. 브랜드를 직접 보유하거나 자체 브랜드를 운영할 경우, 기존 유통 수수료 수익을 넘어 브랜드 사업에서 발생하는 추가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어 수익성 개선에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국내 화장품 산업이 구축한 강력한 ODM 인프라도 제조업 진출을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ODM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어 소비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을 기획하면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시장에 선보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
실제로 이커머스 기업들은 검색어와 구매 이력, 장바구니 데이터 등 방대한 소비자 정보를 확보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소비자가 선호하는 성분과 가격대, 제형, 최신 트렌드를 보다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데이터 기반 상품 기획이 제품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 검증된 브랜드를 해외 시장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도 브랜드 자산은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업계에서 올해 상반기 화장품 수출이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등 K-뷰티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K-뷰티 브랜드를 선점하는 것이 향후 플랫폼의 해외 사업 확장에도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패션 플랫폼 입장에서 뷰티 사업은 객단가와 구매 빈도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매력적인 카테고리”라며 “이제는 입점 브랜드를 늘리는 경쟁을 넘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에 투자하고 육성해 추가 수익을 창출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제조와 브랜드 사업 확대에 따른 우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쟁점은 입점 브랜드와의 이해관계 충돌이다. 자체 브랜드를 운영하거나 특정 브랜드에 투자할 경우 검색 노출이나 추천 알고리즘에서 우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품질과 법적 책임 역시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판매를 넘어 제품 기획과 브랜드 운영에 관여할 경우 성분 논란이나 품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고, 이는 기업 신뢰도와도 직결된다. 여기에 빠른 배송 경쟁으로 인한 물류비 부담도 커지고 있다. 화장품 사업에서 높은 수익을 거두더라도 배송 경쟁이 과열될 경우, 확보한 마진이 물류 비용 증가로 상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는 유통 플랫폼이 주도하는 일련의 변화를 단순한 카테고리 확장을 넘어선 구조적 전환으로 평가한다. 과거 경쟁이 이용자 수와 거래액 확대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어떤 브랜드를 보유하고 육성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입점 브랜드와의 상생 구조를 유지하고 공정한 운영 원칙을 확보하는 것이 선결 과제로 꼽힌다. 제조업 내재화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생태계 갈등을 불러올지는 향후 시장이 주목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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