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맞춤형화장품 시장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해 온 인력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업계는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 액체비누 등 생활밀착형 제품에 대한 소분 판매 절차가 간소화되면 리필 문화 확산과 함께 체험형 K-뷰티 서비스도 한층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식약처는 맞춤형화장품 조제관리사가 아닌 종업원도 소분·판매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화장품을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화장품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개정된 화장품법의 후속 조치로, 오는 8월 18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친 뒤 내년 7월 2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화장품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2026.7.8. 입법 예고) 중 관련 내용
개정안에 따르면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 액체비누 등 4개 품목을 단순 소분해 판매할 경우 국가전문자격인 맞춤형화장품 조제관리사 대신 일정 위생교육을 이수한 종업원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소비자의 피부 상태와 요구에 맞춰 제품을 혼합하거나 즉석 조제하는 맞춤형화장품 서비스는 기존과 동일하게 조제관리사가 담당한다.
맞춤형화장품은 소비자의 피부 상태와 선호도 등을 반영해 판매장에서 화장품을 혼합하거나 소분해 제공하는 제도로, 우리나라는 지난 2020년 세계 최초로 이를 정식 도입했다. 당시 정부는 K-뷰티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맞춤형화장품 산업 육성에 나섰지만, 시장은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
제도 시행 이후 식약처는 2020년 9월 맞춤형화장품 조제관리사 자격 취득 후 1년 이상 경력을 가진 경우 화장품 책임판매관리자 자격을 인정하도록 했고, 2021년 5월에는 판매업자의 조제관리사 겸직을 허용하는 등 자격 활용 범위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자격증 보유자의 활용도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맞춤형화장품 판매업소마다 조제관리사를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하는 핵심 규제는 그대로 유지되면서 현장에서는 제도 개선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리면서 전문 인력 채용에 따른 비용 부담은 더욱 커졌다. 샴푸나 바디워시를 공병에 담아 판매하는 단순 소분 업무에도 국가전문자격 인력이 필요하다 보니 제로웨이스트 매장과 소규모 리필숍, 중소 브랜드 매장의 사업 운영 부담이 적지 않았다. 일부 사업자는 관련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도입을 포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제도 시행 이듬해인 2021년부터 제로웨이스트 업계와 소상공인들은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 액체비누 등 세정류 제품까지 국가전문자격 인력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2021년 6월 화장품 포장재 재활용을 주제로 한 환경부 토론회에서는 전국 100여 개 리필 스테이션 가운데 화장품 리필 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이 4~5곳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제로웨이스트 매장 운영자들은 "단순 샴푸 소분은 전문적인 화학 조제 행위가 아님에도 조제관리사 채용 의무가 부과되면서 영세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사실상 막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정부는 규제 개선 검토에 착수했고, 산업통상자원부와 식약처는 2021년 9월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를 통해 알맹상점, 이니스프리 등 일부 사업장을 대상으로 세정류 4종의 리필·소분 판매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교육을 받은 일반 종업원이 조제관리사 없이도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번 시행규칙 개정은 당시 실증사업을 제도화한 성격이 강하다. 실증 과정에서 안전성 문제가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제도 도입 이후 유지돼 온 조제관리사 의무 배치 기준을 처음으로 일부 완화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는 평가다.
업계는 이번 규제 완화가 국내 리필 시장 확대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샴푸, 린스, 바디클렌저, 액체비누는 반복 구매 주기가 짧고 용기 재사용이 쉬운 대표적인 생활소비재다. 소비자는 기존 용기를 가져와 필요한 양만 구매할 수 있고, 사업자는 별도 전문 인력 채용 부담 없이 리필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올리브영 등 H&B스토어와 백화점, 대형마트는 물론 제로웨이스트 매장과 동네 화장품 매장까지 리필 서비스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향후 매장 내 리필 스테이션이나 맞춤형 소분 공간이 새로운 고객 체험 요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높다.
해외 주요 시장에서는 이미 맞춤형화장품 시장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온라인 설문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제품을 제조해 배송하는 D2C(Direct-to-Consumer) 모델이 활성화돼 있다. 대표적으로 '펑션 오브 뷰티(Function of Beauty)'는 소비자가 모발 상태와 선호 향 등을 선택하면 개인 맞춤형 샴푸와 린스를 제조해 제공하고 있으며, '프로즈(Prose)'는 기후와 생활습관 데이터까지 반영한 맞춤형 헤어·스킨케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개인 맞춤형 기술과 친환경 리필 문화가 결합하는 추세다. 로레알그룹은 피부 톤에 맞춘 파운데이션과 립 제품을 현장에서 제작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으며, 더바디샵 등은 소비자가 다회용 용기를 가져오면 매장에서 제품을 소분해 주는 리필 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이미 주요국에서는 리필 스테이션이 일상적인 유통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일본 역시 AI 피부 진단과 빅데이터 기반 맞춤형 화장품 개발이 활발하다. 폴라(POLA)는 피부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스킨케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시세이도는 피부 상태와 환경 정보를 반영해 개인 맞춤형 제품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이처럼 최근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는 제품 구매보다 브랜드 경험과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업계는 이번 제도 개선을 계기로 K-뷰티의 강점으로 꼽히는 체험형 오프라인 콘텐츠가 더욱 다양해지고 소비자 접점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주요 뷰티 기업들은 맞춤형 서비스를 활용한 체험 콘텐츠를 확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아모레성수와 아모레용산, 라네즈 서울 등에서 피부 특성과 취향에 맞춰 립 제품과 쿠션, 헤어케어 제품을 제작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뷰티 편집숍 시코르 역시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고객의 피부톤과 취향을 분석해 제품을 추천하는 1대1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에는 리필 서비스가 피부 진단, AI 기반 뷰티 컨설팅, 맞춤형 화장품 제조 기술 등과 결합하면서 소비자 체험의 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체험형 K-뷰티 콘텐츠도 다양해지면서 관광 산업과의 연계 효과도 기대된다.
체험형 서비스 확대와 함께 친환경 소비문화 확산 효과도 예상된다. 소비자가 기존 용기를 반복 사용하고 필요한 양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과 자원순환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SG 경영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기업 입장에서도 친환경 활동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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