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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백보다 피부에 투자한다”…중국 부유층, ‘과시형 럭셔리’에서 프레스티지 뷰티로

'프레스티지 뷰티 소비 늘리겠다' 37%, 가죽제품은 4%에 그쳐
품질·효능에 中 문화적 정체성 앞세운 로컬 뷰티 브랜드 약진

 

[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중국 부유층의 럭셔리 소비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고가 핸드백 등 럭셔리 가죽제품에 집중됐던 지출이 감소하고, 고급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등 프레스티지 뷰티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현지 로컬 브랜드가 품질과 디자인, 문화적 정체성을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면서 중국 럭셔리 시장의 경쟁 구도가 재편되는 모습이다.

 

10일 로이터통신은 중국 럭셔리 시장의 소비 대상과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컨설팅 기업 올리버 와이먼과 세계면세협회(TFWA)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년간 프레스티지 뷰티에 대한 지출을 늘리겠다고 응답한 중국 부유층 소비자가 37%에 달했다. 반면 가죽제품에 대한 지출을 늘리겠다는 응답은 4%에 그쳤다.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비자가 지출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때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큰 손으로 통하던 중국 럭셔리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부동산 시장 침체와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소비가 위축됐다. 상하이 봉쇄가 해제되괘, 빠른 소비 회복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시장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했다.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2024년 중국 개인 럭셔리 시장은 17~19%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부터 주식시장의 회복세에 힘입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품목별로 성과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특히 뷰티와 가죽제품 사이의 격차가 두드러졌다. 베인앤컴퍼니는 2025년 기준 중국 럭셔리 시장에서 뷰티 부문이 4~7% 성장한 반면, 가죽제품은 8~11%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에르메스 등 주 럭셔리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뚜렷한 수요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케링 역시 중국 사업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에는 LVMH 산하 면세점 DFS가 중국 하이난에서 추진해 온 대규모 복합 리테일 프로젝트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반면 뷰티에서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로레알은 중국에서 럭셔리 및 더마 스킨케어 브랜드가 성장세를 보였으며, 럭셔리 사업부인 로레알 럭스도 성장했다고 밝혔다. 랑콤과 헬레나 루빈스타인 등 최상위 프레스티지 브랜드 역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프레스티지 뷰티의 부상은 단순히 화장품이 가죽제품보다 가격 부담이 낮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가 핸드백과 같은 일회성·고액 소비는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구매를 미루기 쉽다. 반면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은 반복 구매가 가능하고 자기관리라는 소비의 명분도 갖는다. 상대적으로 낮은 절대가격으로도 최상위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럭셔리 소비를 지속하기에 부담이 적다는 평가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중국 소비자의 변화는 럭셔리 소비의 축소라기보다 지출 대상의 재배치에 가깝다. 베인앤컴퍼니가 중국 럭셔리 시장을 전면적인 회복보다는 소비자가 지출 대상을 다시 조정하는 ‘재조정(recalibration)’ 국면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최근 중국에서 나타나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와도 맞닿아 있다.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럭셔리 시장의 소비자들이 글로벌 명품의 로고와 브랜드 인지도만을 기준으로 제품을 선택하기보다 디자인과 장인정신, 품질, 문화적 의미 등을 중시하면서 중국 로컬 브랜드를 선택하는 현상을 조명했다. 럭셔리 소비가 브랜드를 통해 부를 드러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취향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만족을 얻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주얼리 브랜드 라오푸골드(Laopu Gold)다. 라오푸골드는 중국 전통문화의 상징과 장인정신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구현하며 글로벌 명품과 경쟁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핸드백 브랜드 송몬트(Songmont)와 패션 브랜드 아이시클(ICICLE) 역시 중국적 정체성과 절제된 디자인을 앞세워 프리미엄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이들 브랜드는 서구 명품의 이미지를 모방하기보다 중국의 문화와 미학을 제품의 가치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로컬 럭셔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뷰티 시장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뷰티에서의 ‘조용한 럭셔리’는 화려한 로고나 유명 모델, 고가의 패키지보다 성분, 제형, 효능, 원료, 사용감 등 실제로 경험하는 가치에 주목하는 소비를 의미한다.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에서 제품의 가치를 경험하는 것으로 프리미엄 소비의 기준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중국의 로컬 뷰티 브랜드들은 고급화에 나서고 있다. 일례로 위노나(Winona)와 프로야(Proya) 등은 피부과학과 바이오 기술, 고기능성 성분을 앞세워 제품의 효능을 강조하고 있으며, 베타이니(Botanee)와 블룸에이지(Bloomage) 등도 원료와 바이오 기술을 기반으로 프리미엄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해당 브랜드의 부상을 단순한 애국 소비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앞서 SCMP가 주목한 중국 로컬 럭셔리 브랜드들은 서구 명품을 모방하는 대신 중국 문화와 미학, 장인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품질과 기술력, 효능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중국 소비자가 반드시 서구 브랜드를 통해서만 럭셔리를 경험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중국 럭셔리 시장의 변화는 국내 화장품 업계에 기회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중국 프레스티지 뷰티 시장이 성장한다면 한국 화장품 기업에도 고급화 전략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확보할 기회가 있다. 그러나 프리미엄 시장의 확대가 K-뷰티의 자동적인 수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화장품의 중국 수출이 감소하는 가운데 미국 등 비중국 시장에서 K-뷰티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현상은 중국 소비자의 구매력 문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이 성숙하면서 소비자가 브랜드를 선택하는 기준이 그만큼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프리미엄 뷰티 시장에서 K-뷰티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소비자의 문화적 취향과 로컬 정체성을 기반으로 고급화되는 현지 로컬 브랜드 역시 직접적인 경쟁자로 부상한 것이다. 

 

특히 ‘조용한 럭셔리’가 확산될수록 단순한 한류나 브랜드 인지도만으로 프리미엄을 확보하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 제품의 효능과 기술력, 원료와 제형, 브랜드 철학, 그리고 한국 브랜드만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가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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