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유럽 화장품 산업을 선도하는 대표적 성숙 시장인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소비자의 제품 선택 기준이 재편되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나 가격 대신, 성분과 효능 꼼꼼히 따지는 '실리주의 소비'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효능 중심 실리소비'가 유럽 뷰티 시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부상했다.
독일에서는 드럭스토어를 필두로 가성비·고효능을 내세운 인디브랜드가 대형 글로벌 브랜드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스킨케어의 효능이 메이크업과 헤어케어로 확장되는 '멀티 스키니피케이션(Multi-skinification)' 트렌드와 함께 약국·온라인 유통 채널이 급성장하고 있다.
독일 화장품 시장에서는 주요 유통채널인 드럭스토어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제품 선택 기준이 효능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독일 화장품 시장에서 드럭스토어는 스킨케어부터 더마코스메틱, 대형 제조사의 글로벌 브랜드부터 인디브랜드까지 다양한 제품을 한 공간에서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는 만큼 소비자 수요 변화가 비교적 빠르게 나타나는 유통채널로 꼽힌다.
특히 최근에는 니베아(NIVEA), 로레알(L'Oréal) 등 글로벌 브랜드와 유세린(Eucerin), 라로슈포제(La Roche-Posay), 아벤느(Avène) 등 더마코스메틱 브랜드가 강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성분과 효능, 브랜드 정체성을 내세운 인디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데엠(dm), 로스만(Rossmann), 뮐러(Müller) 등 주요 드럭스토어에서는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제형이나 성분을 앞세운 혁신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NIQ에 따르면 2025년 4월부터 2026년 4월까지 독일 드럭스토어 스킨케어 시장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7% 증가한 11억 7,000만 유로를 기록했다. 특히 같은 기간 상위 10개 스킨케어 브랜드의 매출이 6.5% 증가한 데 비해 소규모 브랜드 매출은 22.9% 증가했다. 이에 대해 NIQ는 "소비자들이 브랜드 인지도만으로 제품을 선택하기보다 자신의 피부 고민에 적합한 제품과 성분, 브랜드의 투명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면서 제품 선택 기준이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가격보다 제품 가치에 집중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독일 드럭스토어에서 판매되는 스킨케어 제품 평균 가격은 3.45유로 수준이지만, 헝가리 브랜드 너즈 뷰티(Nerds Beauty)의 페이스 크림은 20.85유로, 독일 브랜드 엔오 코스메틱스(NØ Cosmetics)의 크림 제품은 15유로에 판매되고 있다. 성분과 효능에서 명확한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 성향이 강화되면서, 인디 브랜드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인디브랜드의 성장에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소통이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엔오 코스메틱스는 인스타그램과 틱톡 등에서 소비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집해 제품 개발에 반영하고 있으며, 너즈 뷰티는 올해 5월 데엠 입점 후 데엠의 SNS 홍보와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바탕으로 일부 제품이 단기간에 품절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기능성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카테고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탈리아 화장품산업협회(Cosmetica Italia)에 따르면 지난해 이탈리아 화장품 소비액은 약 127억 9,000만 유로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으며, 2026년에도 3.5%의 추가 성장이 예상된다. 이 가운데 스킨케어 소비액은 43억 100만 유로로 전체 화장품 카테고리 가운데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현상은 '멀티 스키니피케이션'이다. 스킨케어에서 강조되던 성분과 기능이 헤어케어와 메이크업 등 다른 뷰티 카테고리로 확산되면서 제품군 간 경계가 낮아지고 있다. 메이크업 제품에 보습이나 안티에이징 등 스킨케어 기능을 결합하거나 여러 기능을 하나의 제품에 담은 올인원 제품이 등장하는 식이다.
소비자들의 제품 선택 기준 역시 세분화되고 있다. 피부 탄력과 볼륨 개선, 피부 특성과 톤에 맞춘 효능, 제품의 지속성과 효과 등 구체적인 기능을 강조하는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건성 피부용'과 같이 특정 피부 유형이나 고민을 겨냥한 제품에 대한 수요도 이어지고 있다.
소비 방식에서는 합리적 소비와 프리미엄 소비가 동시에 나타난다. 필수적인 기능에 집중한 단순한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있는 반면, 감각적인 경험이나 개인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에는 이른바 '작은 사치' 형태로 지출하려는 수요도 이어지고 있다.
AI를 활용한 초개인화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는 한편, 전통적인 원료나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도 새로운 트렌드로 제시되고 있다. 기술과 개인화뿐 아니라 브랜드가 가진 역사와 원료에 대한 가치까지 소비자가 제품 선택의 기준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유통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 화장품 유통시장은 대형유통망(grocery), 약국, 향수·화장품 전문점 등 오프라인 채널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2025년 전체 화장품 판매액은 대형유통망이 47억 유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약국이 22억 2,000만 유로, 향수·화장품 전문점이 20억 7,100만 유로로 뒤를 이었다. 전자상거래 판매액은 14억 2,400만 유로로 주요 오프라인 채널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전년 대비 9.8% 증가하며 가장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스킨케어 시장에서는 대형유통망과 약국의 판매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2025년 두 채널의 스킨케어 판매액은 전체 스킨케어 판매액의 약 68%를 차지했다. 특히 약국의 스킨케어 판매액은 14억8,500만 유로로 대형유통망의 14억2,600만 유로를 소폭 앞섰다. 피부 관리와 기능성, 성분 등을 중시하는 소비 경향과 맞물려 약국이 이탈리아 스킨케어 시장의 주요 유통채널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효능과 성분을 꼼꼼하게 따지는 소비가 확산되면서 유통채널을 선택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격과 접근성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와 제품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구매 목적에 따라 채널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프라인에서는 제품을 직접 확인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점을,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제품을 비교하고 가격과 프로모션을 확인할 수 있는 점을 활용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하는 옴니채널 소비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온라인 채널의 성장세도 두드러지고 있다. 2025년 전자상거래의 스킨케어 판매액은 4억 9,100만 유로로 약국이나 대형유통망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이 11.2%를 기록하며 주요 채널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직접 경험하고 구매하는 오프라인 소비와 다양한 제품을 비교·탐색하는 온라인 소비가 구매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온라인 채널의 성장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유럽 화장품 산업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성숙시장(Mature Market)이다. 이탈리아는 화장품 제조업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국가로, 색조 화장품을 중심으로 한 OEM·ODM 산업이 발달했다. 2025년 화장품 소비액(약 128억 유로)은 유럽 내 4위권 수준이나, 강력한 제조 기반과 수출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화장품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인터코스(Intercos) 등을 비롯한 주요 기업이 밀집한 롬바르디아 지역은 화장품 제형 개발과 생산의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샤넬, 디올,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제형 연구와 디자인, 생산 역량을 갖춘 제조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는 점에서 소비시장 이상의 산업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독일 화장품 소비 시장은 연간 약 180억 유로 수준으로 유럽 최대 규모다. 대형 브랜드와 드럭스토어, 더마코스메틱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소비·유통 구조가 형성돼 있다. 바스프(BASF), 에보닉(Evonik) 등 글로벌 화학·원료 기업 중심의 소재 기술력도 강점이다.
이 두 시장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동남아시아, 인도 등 신흥시장과 달리 성숙시장에서의 경쟁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효능과 가치를 중시하는 실리주의 소비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 다양한 글로벌·현지 브랜드가 자리 잡은 만큼 신규 브랜드가 진입하려면 소비자에게 어떤 새로운 가치를 추가적으로 제공할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화장품 제조 강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아시아 뷰티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K-뷰티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스킨케어를 중심으로 병풀(CICA), 달팽이 점액, 발효, 쌀 추출물 등 아시아권에서 주로 활용되는 성분과 제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온라인을 비롯해 세포라와 약국 등 다양한 유통채널에서 아시아 화장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나고 있다.
독일에서도 K-뷰티의 소비 방식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프랑크푸르트무역관은 "과거 K-팝 등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형성됐던 독일의 소비층이 피부 트러블 개선이나 안티에이징을 원하는 30~60대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히알루론산, 콜라겐, PDRN 등 주요 성분과 제품 제형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에서도 한국 화장품의 제품 개발 역량에 주목하고 있다. 독일 드럭스토어 체인 데엠 측 관계자는 한국 화장품의 경쟁력으로 혁신적인 제품 개발과 가벼운 사용감의 제형, 보습과 피부 장벽 관리에 대한 전문성을 꼽았다. 최신 연구 결과와 새로운 유효성분을 빠르게 제품에 적용해 소비자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도 강점이란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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