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인코리아닷컴 김세화 기자] 한동안 잠잠했던 오프라인 뷰티 유통 시장에 다시 경쟁의 불이 붙고 있다. 롭스·랄라블라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H&B(Health & Beauty) 사업에서 철수하며 CJ올리브영의 독주 체제가 굳어진 가운데, 최근에는 백화점들이 전문 뷰티 편집숍을 잇달아 선보이며 경쟁에 다시 뛰어들고 있다.
15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오는 18일 판교점 지하 1층에 더마 뷰티 전문 편집숍 '코오드(Khōde)' 1호점을 연다. 국내 유통업계에서 더마 뷰티를 전면에 내세운 전문 편집숍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성분과 효능을 꼼꼼히 따져 자기 피부 고민에 맞는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기능성 화장품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현대백화점도 전문성을 앞세워 뷰티 사업 영역을 넓히는 모습이다.
코오드는 피부과학(Dermatology)과 미용(Beauty)을 결합한 '더마 뷰티'를 콘셉트로 개인별 피부 상태에 맞는 제품과 솔루션을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매장 규모는 약 165㎡(50평)이다. 기능성 뷰티 브랜드를 중심으로 250여 개 제품을 선보이며, 제약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기업과 피부과 전문의가 개발한 60여 개 더마 브랜드가 입점한다. 이지듀, 마데카파마시아, 아데씨, 포레덤, 주닥 등 대표 더마 브랜드와 함께 헤어와 바디 제품도 판매할 계획이다.
첫 매장으로 판교점을 선택한 것도 이 같은 콘셉트와 맞닿아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판교점은 3040 고객 비중이 높고 고기능성 화장품 수요가 큰 점포다. 여기에 지하철역과 연결된 지하 1층에 매장을 마련해 접근성을 높였다. 현대백화점은 판교점 운영을 통해 코오드의 경쟁력을 검증한 뒤 내년 초 더현대 서울에 2호점을 열고, 향후 백화점과 아웃렛으로 매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제약사 등 다양한 기업과 협업해 코오드 전용 스킨케어 제품을 선보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대백화점이 전문 뷰티 편집숍을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21년 론칭한 '비클린(Be CLEAN)'이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주요 가치로 내세우며, 현재 클린 뷰티 시장을 공략 중이다. 관련 기준을 충족한 뷰티 브랜드를 선별해 소개하는 방식으로, 중소·인디 브랜드의 팝업, 신규 브랜드 발굴 등을 통해 현대백화점의 뷰티 콘텐츠를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코오드는 비클린의 사업을 확장하는 개념이라기보다, 또 다른 전문 영역으로 뷰티 사업의 외연을 넓히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비클린이 친환경·지속가능성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브랜드를 큐레이션한다면, 코오드는 피부과학과 기능성이라는 '효능'을 중심으로 상품을 구성한다. 같은 편집숍 형태를 취하면서도 서로 다른 소비 수요를 겨냥하는 셈이다.
특히 코오드는 제약사와 피부과 전문의 등이 개발한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구성해 일반적인 뷰티 편집숍과의 차별화를 꾀한다. 개별 브랜드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존 화장품 매장과 달리 여러 전문 브랜드를 한 공간에서 비교하고, 자신의 피부 고민에 맞는 제품을 체험·선택할 수 있는 공간을 경쟁력으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현대백화점의 코오드 출점은 백화점 업계가 뷰티 사업을 확장하는 최근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출범 10년을 맞은 뷰티 편집숍 '시코르'를 앞세워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부터 K뷰티 인디 브랜드, 뷰티 디바이스까지 다양한 상품군을 갖추고 명동·홍대 등 외국인 유동 인구가 많은 핵심 상권에 매장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제품 판매를 넘어 메이크업과 컬러 진단 등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하며 K뷰티를 경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실제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문을 연 시코르 명동점과 홍대점은 개점 4개월 만에 매출이 개점 초기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4월 기준 외국인 매출 비중은 명동점 90.2%, 홍대점 91%에 달했다. 외국인 고객이 두 매장의 매출 성장을 이끈 셈이다.
뷰티 디바이스도 시코르의 차별화 상품군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4월 시코르의 뷰티 디바이스 매출은 1월 대비 2.5배 이상 증가했다. 전문 라이선스를 보유한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컬러 진단·터치업 서비스와 자유롭게 제품을 테스트할 수 있는 '립앤치크바' 등도 운영하고 있다. 명동·홍대점에서 메이크업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하루 평균 20~30명 수준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활발한 성수와 안국 등으로 시코르의 추가 출점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7월에는 색조 뷰티 브랜드 '어뮤즈'를 성장시킨 이승민 전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2부문 대표를 신세계백화점 뷰티 편집숍 시코르 수장으로 선임하며 뷰티 사업 강화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과거 오프라인 뷰티 편집숍 '라 코스메띠끄'와 '온앤더뷰티'를 운영했다가 사업을 정리한 경험이 있다. 현재 '온앤더뷰티'는 롯데온의 뷰티 전문 버티컬관으로 전환해 온라인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디지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방식으로 새로운 뷰티 플랫폼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4월 롯데백화점은 청량리점에 K뷰티 플랫폼 '더캐스트'를 선보이며 오프라인 뷰티 사업에 다시 나섰다. 롭스 오프라인 사업을 접은 2022년 이후 4년 만의 행보다. 더캐스트는 단순히 제품을 진열·판매하는 기존 편집숍과 달리 인플루언서가 매장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를 알린 뒤 온라인 구매로 연결하는 온·오프라인 연계 모델을 내세웠다.
초기 반응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더캐스트는 개점 당시 30개였던 입점 브랜드가 두 달 만에 60개로 늘었다. 최근 라이브 방송에 참여한 일부 브랜드는 준비 물량을 모두 판매했으며, 세 차례 방송을 진행한 '클라비안'의 누적 매출은 5,000만 원을 넘어섰다. 롯데백화점은 더캐스트를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인디 뷰티 브랜드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플랫폼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백화점 업계의 변화는 2010년대 유통업계가 펼쳤던 H&B 경쟁과는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당시 롯데쇼핑은 '롭스', GS리테일은 '랄라블라'를 앞세워 올리브영과 경쟁했다. 이마트도 '분스'에 이어 영국 드럭스토어 브랜드 '부츠'를 국내에 선보였다. 그러나 이들 사업은 점포 확대와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부분 철수 수순을 밟았다. 랄라블라는 2022년 오프라인 사업에서 철수했고, 롭스 역시 가두점 사업을 정리했다.
당시 올리브영과 후발주자의 격차를 벌린 핵심 요인으로는 전국적인 점포망과 상품 경쟁력이 꼽힌다. H&B 사업은 점포가 늘어날수록 상품 소싱과 물류 효율이 높아지고, 판매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상품 기획력을 높일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소·인디 브랜드를 발 빠르게 발굴해 소비자에게 선보이면서 '올리브영에서 새로운 뷰티 브랜드를 발견한다'는 구매 경험까지 만들어냈다. 이미 유명한 브랜드를 판매하는 유통 채널을 넘어,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플랫폼으로 역할을 확대하면서 상품 경쟁력도 강화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옴니채널 경쟁력까지 갖췄다. 온라인에서 주문한 상품을 가까운 매장에서 빠르게 배송하는 '오늘드림'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후발주자들이 올리브영과 유사한 상품 구성을 갖춘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이미 구축된 점포망과 상품 소싱, 데이터 경쟁력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웠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 뷰티 유통 시장에 뛰어든 업체들의 전략은 2010년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 H&B 사업자들이 올리브영과 유사한 상품군을 갖추고 점포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경쟁했다면, 지금은 각 업체가 가진 고객 기반과 가격 경쟁력, 상품 소싱 역량을 바탕으로 특정 영역을 공략하고 있다. '제2의 올리브영'이 될 것이냐'의 싸움이라기보다 '올리브영이 장악하지 못한 영역을 누가 먼저 선점하느냐'의 경쟁이란 분석이다.
현대백화점은 더마 뷰티와 맞춤형 큐레이션으로 전문성을 선택했고, 신세계는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체험형 콘텐츠를 앞세운다. 롯데백화점은 인디 브랜드를 발굴해 라이브 방송과 온라인 구매로 연결하는 뷰티 플랫폼 구축에 초점을 둔다.
여기에 다이소와 무신사처럼 기존 H&B와 다른 고객층과 유통 역량을 가진 사업자들도 뷰티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다이소는 5,000원 이하의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10~20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뷰티 소비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VT코스메틱 '리들샷'의 인기를 계기로 아모레퍼시픽 등 대형 화장품 기업까지 다이소 전용 제품을 선보이면서 저가 화장품 유통 채널로서의 입지도 강화되는 모습이다.
무신사는 패션 플랫폼에서 확보한 젊은 고객층과 온라인 영향력을 오프라인 뷰티로 확장하고 있다. 홍대에 첫 뷰티 단독 매장을 열고 다양한 브랜드와 상품을 선보이는 한편, 오프라인 매장을 브랜드를 직접 경험하는 공간이자 온라인 거래를 확대하는 접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무신사 메가스토어 성수의 뷰티존에서는 오프라인 매장 개점 이후 입점 브랜드의 온라인 거래액이 증가하는 등 온·오프라인 연계 효과도 나타났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 시장에서 올리브영의 독주가 단기간에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미 구축한 전국적인 점포망과 브랜드 소싱 역량,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유통 인프라를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올리브영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수요층을 겨냥한 틈새 전략이 확산되면서 경쟁 방식에는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백화점과 패션 플랫폼, 저가 유통 채널 등으로 뷰티 유통이 세분화되면 브랜드의 유통 전략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의 유통망에 모든 제품을 공급하기보다 채널별 고객층과 가격대, 콘셉트에 맞춰 상품을 차별화하고 유통 채널을 세분화하는 방식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경쟁 채널이 다변화되는 가운데 올리브영은 해외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올리브영은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 첫 해외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으며, 이후 센추리시티에도 두 번째 매장을 선보였다. 연내 미국에서 총 4개 매장을 출점해 현지 거점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온라인에서도 해외 사업을 키우고 있다. 올리브영 글로벌몰에는 1,200여 개 브랜드가 입점에 150여 개국에 K뷰티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3년간(2023~2025년) 성장률이 연평균 70%에 달하며 누적 회원 수는 2025년 말 기준 450만 명을 돌파했다. 특히 미국이 글로벌몰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핵심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 사업 확대와 함께 전체 실적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5년 올리브영 전체 매출은 약 5조 8,5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2.1%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7,328억 원으로 22.3% 늘었다. 일본 법인 매출은 201억 원을 기록했으며, 중국 법인은 당기순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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