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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칼럼

[화장품 컬럼] 2023 세계피부과학회(WCD)를 다녀와서

이창석 을지대학교 바이오융합대학 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

[코스인코리아닷컴 전문위원 이창석] 지난 7월 3일부터 8일까지 싱가포르 썬텍 컨벤션센터(Suntec Singapore Convention & Exhibition Centre)에서 2023 세계피부과학회(World Congress of Dermatology 2023, 이하 WCD)가 개최됐다. WCD는 1889년 프랑스에서 시작해 4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피부임상학회로써 이번 학회는 ‘국경을 넘어선 피부과’라는 주제로 전 세계 피부과 의사와 과학자를 중심으로 성황리에 개최됐다.

 

특히 세계피부과연맹(International League of Dermatological Societies, ILDS)은 이번 WCD 후원을 위해 1만 명이 넘는 유치단을 파견해 싱가포르에 수억 원의 관광 수입까지 가져다주었다. 그 외에도 20여 개의 글로벌 기업 후원사와 100여 개의 전시 업체가 참가해 전에 보지 못한 규모의 피부과학회로써 위엄을 보여줬다.

 

또 이번 학회에서는 WCD 2023 녹색정책(Green Policy)을 도입해 확고한 지침과 원칙을 수립해 행사를 주도함으로써 자연 복원에 기여하고 향후 10년간 100만 그루의 나무를 추가로 심겠다는 싱가포르의 OneMillionTrees 운동도 지원하는등 환경이슈 해결을 위한 노력도 엿보였다.

 

 

필자도 오랜만에 이번 WCD 학회에 들뜬 마음으로 참가했다. 코로나 시대에 하늘길이 오랫동안 막혀 있어서 이렇다할 피부나 화장품학회에 제대로 참석한 적이 없었기에 더욱 이번 학회는 기대됐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전 세계 피부과학자들이 모두 참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만큼 어마어마한 참석인원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번 학회 참석자는 약 130여 개국에서 2만여 명 가까이 참석했다고 하니 정말 피부과학 올림픽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이번 WCD는 208개 심포지엄, 15개 기조연설, 24개 강좌, 19개의 전문가 포럼 등 다양하고 포괄적인 주제로 프로그램을 구성해 피부과학과 의학적 기술 발전에 대해 전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됐다.

 

특히 130여 년 동안 개최된 WCD가 동남아시아권에서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동안은 주로 유럽권에서 개최됐으나 최근에는 수만 명의 피부과 전문의가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권에서 개최가 늘어나고 있는데 2011년 우리나라 코엑스에서 개최된 바가 있지만 이번에 동남아시아권에서 처음 개최한 것은 아마도 싱가포르를 중심으로한 동남아시아 피부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관련 시장의 급성장 등이 서양권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번 학회의 슬로건인 ‘국경을 넘어선 피부과’에 걸맞게 인종과 지역을 다양하게 다룬 것이 특징이다. 열대 지방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WCD로써 열대지방의 피부질환에도 초점을 맞췄으며 빈곤국가, 흑인, 이주자, 난민 등 소외받거나 열악한 계층 또는 국가들의 피부 특성, 건강, 질환 치료, 피부색 등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진행된 것에 의미가 있었다.

 

필자도 관심 있는 세션을 듣기 위해 프로그램 북을 꼼꼼히 살펴보았는데, 어찌나 프로그램이 많은지 일정 짜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다. 또 학회장 내에서 세션 방을 찾아다니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걸음을 소비해야 할 만큼 방대한 규모여서 무엇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동선 짜는 데에도 행복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필자는 피부약리를 전공했으나 현재에는 화장품 효능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WCD는 피부과 의사들이 주축이 돼 다양한 피부질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논의하기에 화장품연구원으로서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임상의가 아니더라도 최신 연구 동향과 트렌드, 세계인의 다양한 피부 특성, 연구 방법과 기술 등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화장품 연구기술에도 응용할 수 있는바 그런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선별해 1주일간의 학술 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번 WCD에서는 아토피피부염, 건선, 습진, 피부암, 모발, 손발톱, 색소 장애, 감염, 미용시술, 의료기기, 화장품 등 광범위한 피부과학 영역을 다루고 있었으며 특히 피부과 의사들의 관심에 맞게 역학, 진단, 치료(시술과 수술) 단계로 구성된 내용들이 많았다. 또 plenary lecture와 같은 대강당 세미나 외에도 강의실 수준에서 소단위 세션이 다양하게 구성돼 발표자와 청중간의 거리감이 없어 마치 랩 미팅 하듯 토론 분위기의 프로그램도 많이 있는 것이 특징이었으며 피부임상의의 전문성을 넓히기 위한 교육과정도 제공됐다.

 

필자는 화장품에서 다루는 영역 중심으로 관심 분야 세션에 참여했으며 스폰서 세션에는 글로벌 화장품기업에서 연구하고 있는 동향과 기술을 파악하기 위해 로레알 그룹 계열사를 중심으로 약리화장품 개발 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관심을 뒀다.

 

먼저 국내에서 참석한 연사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 누구인지를 파악해 보았는데 국내 발표자만 40여 명 정도 되는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었다. 이로 짐작해 보건대 아마도 국내에서 이번 WCD에 참석한 인원도 100여 명은 족히 넘을 것으로 추정되니 가히 적지 않은 관심이 있는 것 같다.

 

발표 주제는 수포치료, 지방 시술, 피부이식, 필러, 백반증, 상처치유, 손톱질환, 피부근염, 흑색종, 피부암 등 다양한 피부질환 관련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고 미용 시술도 소개됐다. 특히 화장품 관련 분야에서는 피부조직배양모델 개발, 피부장벽, 색소와 노화, 마이크로바이옴, 자외선 자극, 아토피피부염, 탈모, 여드름 등 국내에서 이슈가 되는 화장품 피부 연구분야가 WCD에 소개됐다.

 

발표자는 대부분 피부과를 운영하고 있는 개인 임상의 또는 대학교수가 많았으며 국내에서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저명한 피부임상의분들의 좌장으로써의 역할도 눈에 띄었다. 미니심포지엄에서는 화장품연구원들의 발표가 인상 깊었다.

 

코스맥스는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미백 소재로써의 가능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터화시켜 제시함으로써 국내 연구 트렌드를 제대로 반영한 발표를 진행했다. 한국의생명연구원은 2D in vitro system을 넘어 평가모델로써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피부와 오가노이드 기술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ex vivo human skin model’을 소개함으로써 화장품 효능평가모델의 최신화를 발표했다.

 

이처럼 피부 기초과학 수준에서 볼 때 임상의들의 피부질환치료 주제와 화장품에서 주로 다루는 피부 생리조절 주제는 서로 인사이트를 얻기에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화장품연구원으로써 의미 있게 들은 해외 연사들의 테마는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와 미세먼지가 인간 피부에 미치는 영향, 안드로겐성 탈모, 여성형 탈모(Female Pattern Hair Loss, FPHL)와 전두 섬유성 탈모(Frontal Fibrosing Alopecia, FFA), 아시아인의 아토피 관련 유전자, 열대기후에서의 보습과 땀, 인종에 따른 피부장벽 차이와 피부질환 발병률, 백반증이나 흑색종과 같은 다양한 색소질환 등을 꼽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이미 국내에서는 새로울 것 없는 테마일 수도 있으나 거꾸로 생각하면 국내 피부과학 연구개발 동향과 속도가 세계에 크게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내심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특히 탈모와 아토피에 관련된 발표가 많았는데 이들 질환은 환경이나 피부장벽과 연계한 연구 결과와 함께 치료제와 화장품 개발로 이어지는 스토리로 글로벌 제약사와 화장품 기업이 스폰서 세션에서 많이 다뤘다. 또 100여 개의 업체 부스에서 기술 설명과 관련 제품을 다양하게 제공해 고객들이 충분히 경험할 수 있도록 했으며 로레알이나 P&G 등과 같은 대기업들은 완제품을 무료로 제공해줘 참가자들에게 소소한 기쁨도 만끽하게 해줬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국내 화장품 선두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나 LG 생활건강이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인데 반면, 은성글로벌 부스에서 의료기기를 선보이며 선전한 것이 눈에 띄었다. 메이저 스폰서도 모두 화이자(Pfizer)나 사노피(sanofi)와 같은 글로벌 대형제약사 중심이여서 화장품보다는 피부과 중심인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제약사도 화장품을 폭넓게 다루고 있어서 큰 이질감은 없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배우고 구경하다 보니 1주일이라는 시간이 짧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려서 4년 후인 WCD 2027(멕시코 개최 예정)이 벌써 기다려졌다.

 

코로나 시대가 지나가면서 각 분야의 학술대회가 다시 활기차게 일어나고 있다.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학자에게는 지식습득과 연구 동향 파악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이 있으나 다양한 전문가들과 담소를 나누며 네트워크를 맺는 것 또한 오프라인 학회에서 얻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소득 중 하나이다.

 

특히 해외 학회에서는 저명한 특정 분야의 대가를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과 겸손함이 절로 나오고 각자의 연구 자세에 대한 각오와 열정을 불태우기에도 충분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피부과학 기술도 절대 뒤처지지 않았음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이번 WCD 학회는 필자에게도 앞으로의 연구 자세와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며 미천하게나마 화장품 산업과 기술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오늘도 열심히 동료와 제자들과 함께 달려볼 것을 다짐해 본다.

 

 

이창석

 

을지대학교 바이오융합대학 미용화장품과학과 교수

화장품 세포효능평가 및 기업부설 효능연구소 자문

대한미용학회 편집위원장

(전)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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