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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CHALLENGE (2)] 변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회를 볼 수 있는 통찰력, 준비가 돼있는 사람만이 기회를 바로잡을 수가 있어

 

[코스인코리아닷컴 전문위원 신윤창] 국내 LG전자와 피어리스, 애경산업, 필립스전자, LG생명과학, 세라젬H&B, 종근당건강 등에서 영업과 마케팅 분야를 두루 경험한 바탕으로 화장품 마케팅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과 방향성을 찾아 나간다. 최근 화장품 시장은 코로나와 함께 국내외적인 많은 변화로 그 어느 때보다도 겪어 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고 있다. 하루에도 어려운 결단을 몇번이고 내려야 하는 시점에서 필자가 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경험치가 실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편집자>

 

# 변화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변화를 뜻하는 영어 Change 중 ‘g’를 ‘c’로 바꾸면 변화는 기회, 즉 ‘Chance’가 된다. 그 만큼 변화와 기회는 한몸과 같으며 변화 속에는 반드시 기회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변화의 기회라는 것은 어느날 거창하게 운명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우연처럼 오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기회는 항상 우리 주변에 사소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를 잘 알아채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이다. 때론 회사를 옮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사업을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며 회사 내에서 부서를 이동하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수준의 기회가 될수도 있다. 어쩌면 그냥 나의 업무를 좀 더 개선할 수 있는 작은 변화의 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 시라쿠사 거리에는 재미있는 동상이 하나 있다. 앞머리의 머리카락 숱은 무성한데 뒷머리는 대머리며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는 모습이 사람인지 동물인지 신인지 모를 이상한 형상이다. 동상 가까이에 있는 설명서를 보면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나를 보았을 때 쉽게 잡으라는 의미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까닭은 내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건 최대한 빨리 달아나기 위해서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동상일까? 정답은 “기회”이다. 사진을 보면 기회의 신이 저울을 들고 있는 것처럼 기회는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는 신이 주는 선물이다. 단지 사람에 따라 이 선물을 누구는 찾아 먹기도 하고 누구는 선물을 받은 지조차 몰라 못먹기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림1 기회를 상징하는 고대 그리스 시라쿠사 거리 동상

 

 

그렇다면 우리는 이 기회라는 선물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고 쉽다. 당연히 나의 업무에 전문가가 돼야 하는 한편, 업무를 둘러싼 경영환경 변화에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너무도 쉽고 당연한 일이라서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은 꾸준히 실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 나태해져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 더욱 어려운 일인 것이다.

 

과거 생활용품이 주력이었던 애경산업은 유니레버의 전문 클렌징 화장품인 폰즈(PONDS)를 팔다가 유니레버와 결별 후 자체 브랜드인 포인트로 갔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마케팅에 힘입어 폰즈의 공백을 메워주는 수준의 매출을 올리고 있을 때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당시 영업지원부 대리였던 나는 ‘왜 애경산업에서 출시하는 화장품은 클렌징만 빼고 잘 안될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물론 영업지원부가 고민할 일이 아니라 마케팅 브랜드 매니저가 더 고민할 일이었지만 나는 답답한 마음에 업무를 떠나 개인적으로 애경산업을 둘러싼 화장품 시장환경을 조사하고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가장 큰 장애요인이 애경산업의 주요 상품인 세제 이미지 때문이었음을 알게 됐다. 주로 옷이나 그릇을 닦아내는 세제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인체의 피부에 큰 영향을 주는 화장품을 만든다는 것이 고객의 시선에서는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결과에 대해 보고하며 당시 큰 히트를 친 조선맥주의 하이트 전략처럼 회사를 감추고 브랜드를 강조하는 전략을 펼쳐야 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애경산업 경영진도 같은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보고서를 읽은 상사는 내가 신규 프로젝트팀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나를 프로젝트팀에 추천했고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여러 브랜드 중에 마리끌레르라는 프랑스 패션 브랜드를 어렵게 라이선스했다.

 

결국에는 직접 마케팅 팀장으로 발탁돼 마리끌레르 화장품을 성공적으로 개발, 출시한 바가 있었다. 당시 1년에 180억 원의 화장품 매출을 내던 애경산업은 마리끌레르 성공에 힘입어 영업이익도 흑자로 전환됐다. 만약 내가 영업지원부 대리로 만족하며 마케팅부만 탓하고 있었다면 과연 마리끌레르 브랜드가 성공적으로 탄생했을까? 그리고 나 또한 영업지원부 대리에서 2년 만에 애경산업의 마케팅팀장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변화의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그들은 항상 준비돼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주어져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은 준비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기회를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준비가 돼있는 사람만이 그 기회를 바로잡을 수가 있다.

 

공자는 ‘순천자는 존하고(順天者存) 역천자는 망하리라(逆天者亡)’ 즉 ‘하늘을 따르는 사람은 살고 하늘에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하늘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듯이 주어진 운명에 따라 살라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늘의 변화를 잘살피고 그 변화의 순리에 맞춰서 살라는 적극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말로 주역(周易)에서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이란 말이 있다. ‘천행건(天行建) 군자이자강불식(君子以自强不息)’ 즉 하늘이 강하게 운행되고 있으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自强) 쉬지 않아야(不息) 한다’. 즉, 쉬지 않고 변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변화를 항상 예의주시하고 이에 맞게 변화하면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아니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기회는 신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숨겨 놓은 보물이지만 변화된 자, 찾을 준비가 된 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이 내리는 공정성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공평성(公平性)과 공정성(公正性)을 잘 구분해야 한다.

 

공평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대해주고 똑같은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만약 공평하게 돌아간다면 이처럼 불평등한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어떤 이는 대충대충 일해도 똑같이 공평한 대우를 해준다면 세상에 누가 더욱 열심히 일을 하겠는가? 그래서 공정해야 한다. 사람마다 태도와 성과가 다르듯 사람마다 평가도 다르고 보상도 달라야 하는 것이 공정성이다. 기회는 언제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결과는 절대 공평하지 않고 사람이 하는 바에 따라 공정하게 평가돼야 한다.

 

# 남극의 황제펭귄이 주는 교훈

 

남극에 사는 대부분의 펭귄들이 먹이가 풍부하고 비교적 따뜻한 바닷가에서 군락을 이루며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에 반해 황제펭귄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가장 추운 내륙에 산다. 천적인 바다표범이나 도둑갈매기로 부터 소중한 새끼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먹이가 풍부하고 따뜻한 바다와 멀리 떨어진 거센 눈바람과 영하 40도가 넘는 강추위를 선택한 것이다. 황제펭귄의 선택은 엄청난 고난이었다. 남극, 그중에서도 가장 추운 얼음의 땅 그곳은 그 어떤 천적보다도 힘든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자연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했고 지금도 생존하고 있다.

 

그림2 가장 추운 남극 내륙에서 끊임없는 변화로 살아남은 황제펭귄

 

 

황제펭귄은 먼저 자신들의 신체를 두터운 지방질로 이루어진 육중한 몸으로 바꿔 추위를 버티고 오랫동안 먹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개인 저장창고를 만들었으며 혼자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강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는 허들링(Huddling)이라는 집단 협력의 체계도 만들었다. 또 알을 하나만 낳아 추운 땅이 아닌 아비의 발등에서 두터운 뱃살로 덮어 부화하고 어미와 아비가 교대로 새끼를 키우며 먹이를 공급하는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지혜도 깨우쳤다. 이런 황제펭귄의 생존의 힘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그림3 혹독한 남극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된 생존법 ‘허들링’

 

 

바로 혁신(革新)과 협력(協力)에 있다. 혁신의 ‘革’ 은 가죽을 뜻한다. 과거 동물의 가죽을 벗겨서 수많은 무두질의 힘듦과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 있어야만 우리가 입을 수 있는 새로운 가죽 옷으로 탄생했듯 혁신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기다림 대신에 썩은 살을 바로 도려내야 새살이 돋아 나듯이 살(가죽)을 벗기는 지독한 고통의 대가를 치뤄야만 혁신을 얻을 수가 있다.

 

황제펭귄은 다른 펭귄들과 달리 비대한 몸집과 함께 차갑고 딱딱한 얼음의 땅을 걷기 위해 날카로운 발톱과 견고한 피부의 발도 얻어냈다. 이것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자연스런 진화일 수도 있지만 엄청난 자기계발이고 혁신에 가깝다. 또 협력(協力)의 협(協)자를 살펴보면 열 십(十)자와 힘 력(力)자 세 개로 이뤄져 있다. 나무(木)가 두 개 면 숲(林)을 이루고 세 개면 더 무성한 숲(森)이 된다.

 

그리고 이 두 글자를 합한 다섯 개의 나무를 우리는 삼림(森林)이라고 한다. 그런데 협력(協力)은 힘(力)이세 개인 것도 모자라 그 앞에 10(十)을 더했다. 아마도세 사람의 힘이 열 배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협력임을 표현한 것 같다. 그 만큼 단체의 힘은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황제펭귄의 허들링은 일정한 시간을 주기로 바깥의 펭귄이 안으로 들어오고 안의 펭귄이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 속에 나 하나만 더 따뜻하고 싶다는 이기심보다 바깥의 동료를 생각하는 배려심에 의해 이뤄진 놀라운 산물이다.

 

수만 마리의 황제펭귄 집단과 허들링이라는 협력체계는 바로 황제펭귄이 남극 내륙에서 살아날 수 있도록 변화된 생존법이 됐다. 펭귄들은 같은 조류로서 철새처럼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버리면 좋았겠지만 풍요로운 먹이가 넘치는 바다가 있는 남극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그러나 황제펭귄은 좀 더 따뜻하고 먹이가 풍족한 바닷가를 버리고 오히려 남극에서도 가장 추운 내륙을 선택했고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도망가지 않고 당당히 맞서서 이겨냈다.

 

하지만 분명히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추위와 맞서 싸우는 것은 엄청난 아픔이 따랐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황제펭귄의 선조들은 그 매서운 아픔에 두려워 다시 따뜻한 남쪽 바다로 도망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은 협동의 힘으로 극복할 수가 있었고 그들은 변화해 생존했다. 

 

# 해빙의 아픔을 넘어

 

변화는 언제나 아픔이 따른다. 그래서 변화가 두렵 다. 커트 레빈(Kurt Lewin)은 변화관리의 3단계 모델을 설명하기 위해 사각형의 얼음을 원뿔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얼음을 녹여(Unfreeze), 새로운 모양으로 변화(Change)시킨 후 다시 얼리는(Refreeze)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얼음을 녹일 때는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따르고 이를 극복해 변화를 시도할 때는 고통의 과정이 따르지만 다시 단단하게 얼음으로 재결빙되는 것은 그 아픔이 치유돼 변화가 정착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처럼 조직에서의 변화는 아픔과 치유의 반복과정을 거치며 더욱 단단하게 영글어 가는 것이다.

 

그림4 커트 레빈이 주장한 변화관리의 3단계

 

 

고통은 짧고 그 후에 따르는 기쁨은 영원하다. 변화하려면 먼저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고통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야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는다는 속담처럼 썩은 살을 도려내는 일은 한 순간의 고통이지만 새 살이 돋아나면 영원한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변화하고 잘났다고 떠들어도 소용없다. 청나라 때 문장가인 황소배(黃小配)는 ‘유복동향 유난동당(有福同享 有難同當)’이란 말을 했다. 좋은 일은 함께 누리고 어려운 일도 함께 해결하자는 의미다. 행복은 함께하면 두 배가 되고 어려운 일은 함께 하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옛 말처럼 조직에서의 변화는 혼자만이 짊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조직원 전체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세상 나 혼자인 양 독불장군이 돼도 안 된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두려움을 떨치고 먼저 나의 작은 변화를 이룬 후에 조직원들과 함께 변화의 흐름을 타고 가야할 것이다.

 

# 채찍효과(Bullwhip Effect)

 

유통물류 분야에서는 채찍효과라는 말이 있다. 긴 채찍을 잡은 자가 손잡이를 작게 흔들기만 해도 채찍의 끝은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제품의 공급망 사슬에서의 채찍효과는 고객의 정보가 여러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과장되고 왜곡되게 전달돼 생산단계에 가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의 주도자라는 측면에서는 개인의 작은 변화가 조직의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채찍효과를 강조하고 싶다.

 

그림5 채찍효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최초의 국산 필러 ‘아브아르’

 

 

과거 애경산업을 비롯해 LG생명과학, 세라젬 등 여러 회사에서 먼저 나의 작은 변화를 만들고 채찍효과 처럼 조직의 변화를 주도했다. 그리고 그 결과 회사의 전체 실적은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는 시발점이 됐다. LG생명과학에서 마케팅전략팀장으로 근무 당시 회사의 가까운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여러 의약품 PPM(Product Portfolio Management) 전략들을 수립했는데 그 중 하나가 근골격계 분야에서 회사의 핵심제품 중의 하나인 관절 주사제인 ‘히루안플러스’였다.

 

그림6 미래를 대비하는 PPM 전략

 

 

그런데 나는 근골격계에 통용될 신약보다 히루안플러스의 원료인 고분자 히알루론산에 주목했다. 히알루론산은 화장품 회사에서 근무했을 당시 가장 흔하게 사용했던 친숙한 보습성분이기 때문이다. 또 LG생명과 학에서 관절주사제 뿐 아니라 히알루론산을 여러 의약품의 성분을 인체에 전달해 주는 DDS(Drug Delivery System)로 잘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래서 근골격계 시장이 아닌 미용성형 시장에 회사가 기술적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히알루론산을 이용한 피부용 필러(Dermal Filer) 주사제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회사는 반대를 했다. 일단 미용성형 시장은 회사에서 영업적으로 너무 생소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또 기술적으로도 피부에 흡수가 잘 되는 히알루론산을 피부에 오래 머물게 하기위해 히알루론산의 선형적인 분자구조를 크로스링크(Cross Link)된 형태, 즉 철망처럼 바꾸는 게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R&D를 비롯한 각 부서장들은 강하게 반대의사를 냈다.

 

하지만 회사의 강점과 기회요인이 매우컸다. 당시 국내 필러 시장은 계속 성장세에 있었지만 프랑스 제품들이 수입돼 비싸게 팔리고 있었으므로 LG생명과학에서 국내 최초로 국내산 제품을 출시하고 가격을 혁신적으로 내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게다가 가격 경쟁력으로 중국 시장에 빠르게 진출한다면 절대 실패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회사의 임원진을 설득해 결국 필러 개발을 승인 받았으며 국내산 필러가 R&D에서 개발되는 수년의 기간동안 스위스산 에스텔리스 브랜드를 수입해 영업에서 피부과와 성형외과 주요 의사들을 사전에 컨택하며 필러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년 후에 나온 최초의 국산 필러인 ‘이브아르’가 출시되자 예견대로 이브아르는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록 나는 ‘이브아르’가 출시되기까지 회사에 머물지 않고 세라젬으로 회사를 옮기는 바람에 성공의 기쁨을 누리진 못했지만 이 모든건 채찍효과처럼 한사람의 작은 변화의 시작이 큰 조직을 변화시켜서 이루어진 성공사례였다.

 

# 변화의 즐거움을 찾아라

 

애경산업에서 마리끌레르 화장품 런칭을 성공하고 좀 여유로워지기도 전에 또 다른 변화를 모색했다. 마리끌 레르 브랜드는 프랑스 것을 빌려온 것이기 때문에 매년 많은 로열티를 지급해야할 뿐 아니라 크게 성공을 했다 해도 프랑스 본사에서 계약 만료 후 다른 회사를 찾는다면 애경산업 입장에서는 곰이 재주만 부리고 마는 경우가 될지도 모른다는 리스크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식투자에서도 한주식에만 투자할 경우 발생할 수있는 리스크(Risk)를 줄이기 위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분산투자를 강조하는 것처럼 기업에서도 한 제품만으로 성장하는 것엔 한계도 있고 리스크가 크다. 비록 히트제품이라 해도 제품수명주기(Product Life Cycle)가 성숙기에 들어갔을 때 대타가 없으면 회사에 끼치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고 지속적인 성장과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선 신제품 개발과 함께 효과적인 프로덕트 포트폴리오(Product Portfolio)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5년 계약을 했던 마리끌레르가 당시 만 1년만 지났 는데도 출고가로 년 매출 200억 원대를 돌파하며 승승장구를 하고 있던 때였다. 사람들은 벌써부터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다고 하며 좀 더 마리끌레르에 집중해서 매출을 더욱 신장시키라고 했지만 애경산업이 진정한 화장품 회사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자체 브랜드가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한국의 화장품 시장 현황을 다시 한번 집중 분석 하는 한편, 세계 화장품 트렌드를 다방면으로 조사했다. 1997년 아직 인터넷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국내외 패션잡지를 구독하고 화장품 전문 해외 트렌드 정보를 구입해야 하는 등 꽤 어려움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집중적으로 종합 분석한 결과 한 가지 답을 찾아냈다.

 

당시 화장품 시장은 주름개선, 미백 등의 기능성 화장품이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는데도 우리는 미쳐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지금이라도 개발해 따라하기에는 시점이 너무 늦었다.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시장을 장악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국내 시장에 없는 정반대의 관점으로 세계 시장의 신제품 현황을 계속 찾아봤다.

 

그러다 문득 일본에서 막 시작하는 여드름 화장품 시장에 주목하게 됐다. 국내 법규상 또는 통념상 화장품으로 여드름을 치료를 한다는 것은 금기사항과도 같았기 때문에 누구나 관심은 있었지만 선뜻하기 힘들었던 여드름 화장품을 꼭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사의 반대는 거셌다. 사회 통념의 한계에 부딪치기를 두려 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여드름 화장품만이 화장품 후발주자인 애경산업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블루오션이라 생각했고 상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영층에 직접 보고를 한 끝에 늦어졌지만 결국 1년 후에 여드름 전문 화장품 브랜드 에이솔루션(a-Solution)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마리끌레르 브랜드를 런칭한지 2년만의 일이었고 에이솔루션의 성공으로 애경산업은 다른 브랜드들과 시너지를 창출하며 화장품 매출 1천억 원대 회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림7 혁신과 변화 끝에 성공을 거둔 에이솔루션

 

 

마케터에게 브랜드 하나를 개발해서 런칭하는 일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부담감과 함께 밤낮으로 일해야 하는 보통 힘들고 고단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이 일을 어쩔 수 없이 했다면 하루하루가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이 재미있었다. 나의 뇌는 끊임없이 아드레날린을 펌프질하고 있었다. 성공에 대한 기대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 그 자체가 주는 기쁨은 어떠한 쓰디쓴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달콤한 꿀 같았기 때문이었다.

 

# 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자신의 인생을 간략히 얘기하며 말한 명언이 있다. “무덤 안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것보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우리가 놀라운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변화를 만들어 매일 밤벅찬 가슴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그가 애플에서 쫓겨난 후 단 돈 1달러를 받고 다 쓰러져가는 애플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잃어버린 돈과 명예를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했다고 했다. 가슴은 이미 이성적인 머리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매우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는 연설의 마지막에 시대를 넘어 길이 남을 명언을 하나 남겼다.

 

“Stay Hungry, Stay Foolish!”

 

“Stay Hungry”란 말은 말 그대로 직역하면 배고품을 유지하라는 말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국가대표를 4강 신화로 끌어올린 명감독 히딩크도 우리가 세계 강호들을 물리치고 떠들썩 소란을 피웠을 때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히딩크 감독이 그 때 그 수준에서 “이만하면 만족한다. 난 할만큼 다했다”라고 말했다면 어찌 우리나라의 4강 신화가 이뤄졌겠는가.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란 말은 결국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스탠포드라는 명문 대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지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성취감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졸업생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얘기하면서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사업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초심을 잊지 않고 자신을 절박하게 몰아 부치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임을 일깨워주고 싶었을 것이다.

 

‘Stay Foolish’도 또한 바보가 아니라면 이 말이 진짜 바보가 되라는 말이 아님을 누구나 알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낮추어 좀 모자라 듯 항상 배워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대함’의 가장 큰 적은 ‘좋음’이고 내가 맞서야 할 가장 큰 적은 바로 스스로 만족하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Stay Hungry, Stay Foolish”해 져서 과거의 나를 부수는 것이 새로운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 것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변화는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변화를 통해 계속 새로움을 접한다는 것은 가슴을 방망이 치듯 뛰게 하는 놀라운 기쁨이다. 나는 애경산업에서 어렵게 마리끌레르와 에이솔루션을 출시했던 때도 LG생명과학에서 필러를 출시하고 생소한 의사들을 만나러 다녔던 때도 나중에 40대 후반의 나이에 중국어도 못하면서 중국으로 넘어가서 세라젬 화장품 중국 법인을 세우고 맨땅에 헤딩하듯 방방곡곡을 누비며 영업을 했던 때도, 모두 힘든 과정이었지만 인생의 한 줄기 행복감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스티브 잡스 또한 그런 즐거움으로 지속적인 변화의 원동력을 창출했을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다. 이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필수조건이다. 변화를 즐겨야 한다. 즐거운 일을 하는데 어떤 고통과 두려움이 문제겠는가? 공자도 이같이 말했다. “아는 자가 돼야 한다. 그러나 아는 자는 좋아서 하는 자를 못 당하고 좋아서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 당한다(子曰 知者 知者不如好者 好者不如樂者)” Change, 변화를 즐겨라.

 

 

 

신윤창 AMH&B 전무

 

LG전자, 피어리스화장품, 애경산업, 필립스전자, LG생명과학에서 영업과 마케팅 업무를 했다. 이후 세라젬H&B와 종근당건강의 중국법인장과 화장품사업본부장을 지냈다. 특히 세라젬H&B에서는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수료한 후 현재 대전대학교 대학원 뷰티건강관리학과 마케팅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신규 화장품회사 AM H&B에서 전무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챌린지로 변화하라', '우당탕탕 중국 이야기', '인식의 싸움', '지금 중요한 것은 마케팅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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